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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사건&사고

[과거사건] 임진왜란

블로그   2017. 11. 13. 08:00

 

 

 

개인적으로 역사를 매우 좋아하며, 우리가 교육으로 배우지못하였던 역사에대해서

 

알아가는 재미를 드리고자 이 카테고리를 제작하였습니다.

 

과거 오랜 우리의 역사 뿐만아니라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현재 사건들과 사고들을

 

이 카테고리에 녹여서 포스팅 하도록 하겠습니다. 

 

 

즐겁게 읽어주시고 편안하게 본인들이 알고있었던 역사들의 또다른 부분들을 보며 이해하고 넘어가시면 좋을것 같습니다.

 

제 페이지에 들어와주시는 단 한분이라도 즐겨주신다면

저는 계속 포스팅 하겠습니다.

 

관련된 많은 자료들이 있지만 포스팅글자수가 너무 늘어나면 지루해지니까

 

최소한으로 글자를 줄여서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감기조심하시고 좋은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본 페이지는 여러가지 경로를 통해 얻은 지식들로 작성한 것이며, 

 

 어떠한 상업적인 용도로 쓰지않을 것이므로

퍼가실때도 댓글하나만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임진왜란]

 

 

 

안녕하세요?

 

오늘은 임진왜란이 발발하게된 배경과 일본군의 상륙,

 

그 이후 전황까지 알아보도록하겠습니다.

 

 

 

1592년 ~ 1598년 까지

 

 

 

2차례에 걸쳐 조선을 침략한 일본과의 전쟁입니다.

 

조선최대의 전쟁중에 하나.!!!

 

 

 

임진왜란이 일어나게된 배경은 무엇일까?

 

 

당시 15세기 말 일본에서는 패권을 장악하기위해서

각 영주들의 전국시대가 이어지고있었고,

 

 

1587년 도요토미히데요시가 혼란스런 정국을 통일로 끝냈습니다.


도요토미히데요시는 일본영도를 정복한 자신감으로

아시아의 맹주였던 명나라를 공격하려는 계획을 세우게되는데,

 

이 계획에는 당시 일본정국을 내부적으로 들여보아야할필요가있습니다.

 

 

 

 

 

 

 

첫번째, 통일후에도 불안한 일본 정세

 

 

 

당시 일본은 봉건국가였고, 각영지에 영주들이지배하고있는 지방분권국가였습니다.

 

 따라서

 

각 지역의 무사들은 그 지역 다이묘를 섬기는 것이지 통일을 이룩하였어도,

도요토미히데요시를 섬기는 것은아니었으므로 통일후에도 불안한상태였습니다.

 

이에 도요토미는 전쟁을 통해 외부에 적을 두어 (당시 중국과 조선같은 나라)

 

내부의 결속력을 좀더 높일필요가  있었습니다.

 

 

 

 

 

 두번째, 조선을 우숩게보았다.

 

 


외교 정세보다는 일본 전국통일에 관심만 가지고있었던 왜나라는

 

조선이라는 나라를 명나라에 조공을 바치는

(일종에 일본으로 따지면 지방 영주정도의) 봉건 국가라고 생각했었고,


통일이후 조선의 중심인 한양에 상주시킨 외교관에게서 이상한 보고를 듣게됩니다.

 

조선에는 군대가 거의 없다는 정보였는데

 

그렇게 볼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시 조선은 무예를 멸시하였고, 대부분의 상비군은 여진족등

북방족들의 침입을 막기위해 북쪽에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도요토미히데요시는 대마도주를 통해, 조선에게 한가지 요청을 하게됩니다.

 

 일본의 전국통일 축하명분으로 통신사를 파견하라는 요구이었는데요

 

이를 알게된 조선은 건국후 130년만에 사절단을 만들어 왜나라에 파견하게됩니다.

 

왜나라에 파견된 통신사들은 왜가 전쟁을 준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여기서 다들 알고있는 조정에서 동인과 서인의 의견다툼이 있게됩니다.

 


 

 

 

선조는

전쟁은 없을것이란 동인세력의 주장을 믿었었을까?

 

 

 

동인이 전쟁이 일어나지않으니 전쟁준비는 필요없고,

 

전쟁반대를통해 동인의 세력을 넓히기 위한 반대를 했다는것을

그동안의 교육과정에서 배웠을 것 입니다.

 

 하지만

 

 그 동안의 우리가 교육과정에서 배운것과는 다르게 선조와 동인 또한

전쟁이 날것을 예상하고 있었고, 전쟁 준비도 했다는것이 정설입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동인들은 단지 왜나라의 침공 규모에 대해서 서인과는 인식의 차이가 존재하였고,

왜나라에서 침공해봐야 5만병력 규모 이내로 올것이라고

 일본이라는 나라를 과소평가했다는 점입니다.

 

 

전쟁준비과정에서 성을 재축성하여 보완하고,

전쟁에 대비할 수 있는 상비군을 늘이는 대대적개편이 필요하였고,

 

 

전쟁준비과정에서 지방에서 이를 반대하는 상소가 빗발치게 올라오게 됩니다.

 

 

 일본이 만에하나 조선을 공격해오지 않는다면,

지금하는 전쟁준비가 너무나 큰 국력낭비가된다는 게 부담이 되었을것입니다.

 

 

당시 조선을 다스리던 선조입장에서는 국운을 좌지우지할수있는 준비단계에서

무리한 선택은 하지 못했을 수도있습니다.

 

 

 

 

 


왜나라의 조선 상륙, 파죽지세의 공격속도,

조선은 무기력하게 당하기만했나?

 

 

 

 

1592년 4월 13일 일본 나고야 예비군 13만을 제외한

지상군 16만명,수군 4만명 도합 20만의 정규군이 부산에 상륙하여,

같은해 5월3일 보름만에 한양함락 , 6월 15일 평양성까지 함락당하게됩니다.

 

 

조선은 상주전투,탕금대전투,용인전투 등 패배를 연달아하게됩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일본은 엄청난 속도로 거의 2달만에 평양까지 도달하게 되는데,

 

왜 이렇게 빨리 조선의 중앙으로 진격하려한 것 일까요?

 

 

당시 일본은 다이묘중심 지방분권국가였고,

 

도요토미히데요시는 다이묘들을 항복시키면서

그지역 영지들을 흡수하며 전국을통일하였습니다.

 

항복당한 다이묘들은 두가지 선택지밖에 없었는데

 

 

 

첫번째 선택은 항복하거나,

 

두번째 선택은 자신의 성에서 목숨을 걸고 최후의 항전을 하는것이었습니다.

 

 

 

 따라서

 

한양만 단기간에 도달하여 조선의 왕(선조)만 포로로 잡으면,

 

당연히 2가지 선택지중 선택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그이하 백성들과 장군 및 병력들은 자연스레 항복할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한 나라의 왕이 다른곳으로 도망간다는 것 자체를 상상할수없었기에

 

왕이 한양을 버리고 파천할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것 입니다.

(*참고로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어쩔수없이 도망침,

결국 도망쳤던 결정이 최고의선택이었다)

 

따라서,

 

왜는 막대한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조선의 모든 지방의 성들과 방어시설을 제끼고

 

한양 및 평양으로 진격하게 되었습니다. (왕만 잡기위해서)

 

 

결국 부산에서부터 평양까지 각종 성들과 방어시설을 처리하지 못한채

너무 빠르게 진격한 결과 전선이 길게 늘어지게 됩니다.

 

 

이는 남의 땅에서 전쟁을 하고있는 일본 입장에서 큰 걸림돌이되는데

 

 

 

그 이유는 보급입니다.

 

 

 

빠르게 진격하는 와중에 최대 곡창지대인
호남정복을 정복하지 않았었던것이 가장 큰 잘못이었습니다.

 

당시 도요토미히데요시는 20만대군을 꾸릴때,

 

수많은 정규군을 먹일 군량을 준비하지않았습니다.

 

 

20만명의 군량을 준비한다는게 쉬운일이 아니었었고,

 

조선 전영토를 하나의 큰 보급전선으로 만들어 명나라를 치려는 계획이었기 때문에

 

 최대 곡창지대였던 호남을 초기에 장악하지 못한점은 이후 장기전으로 변한 조선 전장에서 패배의 큰요인이 됩니다.

 

 

 

 

 

 

당시 무기력하게 조선은 당하기만했을까요?


 

 

 

1926년 일제가 쓴 일본 전사 조선력에 따르면

조선군의 저항이 격렬하여, 일본의 피해가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당시 일본의 정예1군 선발대 고니시유키나는 1만8천7백명을 이끌고

평양까지 진격하지만 9개월만에 6700명정도남을정도로 피해를 입었고,

 

 

 

비교적 전투가 적었던 일본의 정예3군도 전력에 53%밖에 남지 않았을 정도로

실제로는 조선이 무기력하게 쓸려나갔던건 아니다 라고

 

 

일본이 직접 쓴 역사적 기록에도 남아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알았던 임진왜란의 또다른 부분들을 포스팅해드리며

읽으시는 분들 모두 지루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포스팅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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